단장님을 처음 만난 건 지난 5월이었다. 아프간에서 휴가를 받아 한달간 한국에 들어오신 틈을 타 인터뷰를 했다.

강남의 모 호텔 커피숍에서 교수님을 만났는데, 헉... 미군 군복 차림이었다. 트랜스포머를 보면 미군들이 입고 나오는 모래 색깔의 개구리 얼룩무늬. 단장님은 한국의 PRT 소속이지만, 미군 장교가 선물로 준 것이라고 했다. 
아마 아프간 모래사막에서는 미군복을 입는 것이 위험했지만, 한국에서는 편하게 입을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신 것이다.

MRAP을 타고 이동중인 박정동교수. 사진에 보이는 두다리는 외부경계를 맏고있는 미군 흑인병사의 다리. 완전무장을 한 미군, 한국군 포함해서 무려 22명이 4대의 MRAP으로 전문가 한명의 신변경호를 하고 있다.  



이 분은 '새마을 운동'의 광팬이다. 지금 아프간에 파견돼있는 이유도, 아프간에서 '새마을운동' 형 개발경제 계획을 추진하기 위해서다. 아프간은 '한강의 기적'을 꿈꾸면서 열심히 한국을 쫒아가기 위해 발에 땀이 나도록 뛰고 있다고 한다.

요즘 정부에서 G20세대를 띄우려고 애쓰고 있는 중인데, G20세대라는 말이 작위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지만, 심정적으로는 찬성하는 쪽이다.  그동안 대한민국에 대해 자부심을 갖기보다는 부자들만 잘사는 나라, 인권이 없는 나라 등등 자학해왔던 게 아닌가 생각한다.

식민지와 전쟁, 가난에서 60년만에 세계 10위권의 나라로 성장한 케이스는 없다. 이런 모델은 전무, 후무하며, 분명 칭찬받을 만한 일이다.

남북통일이 됐다고 가정해본자. 가장 중요한 임무는 북한의 생활수준을 남한의 수준만큼 끌어올리는 일이다. (우리가 북한 수준으로 맞출 순 없으므로) 그래야, 남한 국민들의 수고가 줄고, 세금(통일세 등)도 적게 내게 될 것이다. 부담을 최소화하는 방법이다. 
또, 사회적 문화적 통합을 앞당길 수 있는 방법이고, 그래야 제도적 통합도 빨리 이룰 수 있다.

북한의 생활수준을 단기간에 효율적으로 끌어올리는 방법이 뭘까. 
그 해답으로 박정동 교수는 <새마을 운동>만한 것이 없다고 추천한다. 
이미 남한 사람들이 실천해서 효과를 봤기 때문에, 걱정할 것도 없다. "북한 사람들이 우리보다 더 악착같으면 악착같지, 무디진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농촌을 잘 살게 하고, 여기서 생기는 유휴인력을 (주로 젊은 여성들) 도시로 보낸다. 도시에는 마산, 창원처럼 신발, 섬유 공장 등 낮은 수준의 경공업을 육성한다. 이같은 수출 주도형 산업을 통해 (푼돈이겠지만) 외화를 벌어들이고, 점차 높은 수준의 공업을 육성해 경제발전을 일으키는 수순이다.

걸림돌은 없을까. 경쟁원리를 도입하는 게 첫번째 관문이라고 한다. "왜 열심히 일을 해야 하는지, 왜 튀근(퇴근 아니고) 하면 안되는지, 왜 결근하면 안되는지" 잘 모른다고들 한다. (탈북자들이 남한의 회사에서 잘 못받아들이는 부분이라고 함) 그러나, 인센티브제를 도입하면, 이것도 쉽게 해결될 수 있다고 한다.

사실, 북한은 우리보다 더 쉽게 발전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남한이라는 든든한 백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1970년대 경제발전 시기에 우리가 겪었던 여러가지 착오와 잘못은 반복되지 않았으면 한다. 

박정동 교수님은 8월말, 1년간의 아프간 임기를 마치고 귀국한다. 안식년을 아프간 생활에 바친 박 교수는 어떻게 보면 '또라이' 이기도 하다. (교수님 죄송;;; ) 가족들도 말렸다고 한다. "군인도 아닌 당신이 왜 아프간에 가야 하느냐."고. 그래도 있을 수만 있다면, 아프간 근무를 1년 더 연장하고 싶다고 한다. '미쳐야 미친다'는 말이 있듯이 '또라이'가 세상을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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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교수님으로부터 받은 이메일>

환송식은 여기 외교부, KOICA등 여러분들이 모두 그만두고 떠나기때문에

초간단으로 마쳤습니다. 그리고 14일에 챠리카르기지를 떠나 지금은 바그람미공군기지에 와 있습니다.

제가 마지막으로 떠나는 날(14일) 기지에서 차로 수분밖에 걸리지않는 주정부청사에서 텔레반들에 의한 자살폭탄테러로

최소20명 사망 35명중상이라는 사태가 발생했고, 오전 11시 45분에 탈레반들에 의해 로켓포가 발사되면서 시작된 테러가 내가 헬기를 타는 시간인 2시가 지나서 까지 시가지 총격전이 계속 될 정도 였으니까요. 그리고 그날 밤에는 한국군기지에도 무려6발의 로켓포가 발사 되었으니까요. 참으로 어려운 상황인것 같습니다. 지난번 휴가나가기직전에도 지뢰가 터져서 여러명이 다리가 절단되는 대참사가 있엇는데, 이번에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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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남한에 '북한문화원' 하나쯤 있어도 괜찮다." [기사 보러 가기] 


탈북자 가운데 피아니스트가 있어?


통일부를 오래 출입한 기자가 '탈북 피아니스트 김철웅씨'에 대한 얘기를 듣고 보인 첫번째 반응입니다.

그는 여러가지로 독특한 이력을 가진 탈북자입니다.
매우 유복한 가정에서 자란 '부르주아' 탈북자이고,
여섯살 때부터 피아노를 친 음악 예술인입니다.

4년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유학시절을 보냈고
평양에서 서양 팝음악을 연주했다가 시말서를 쓴 뒤
피아노를 맘껏 치고 싶어 중국으로 도망 나왔습니다.

탈북 도중 붙잡혀 북송이 되었다가도
당 고위간부인 아버지의 친구의 도움으로
하루만에 수용소에서 풀려났고
14시간동안 매를 맞으면서도 손을 보호하기 위해
겨드랑이에 손을 꼭 끼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북한의 인권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김정일리아'에 출연했습니다.
제가 그를 처음 알게 된 것도 '김정일리아'에서 였습니다.

그는 2002년 탈북해 한국에 10년째 정착해 살고 있습니다.
그는 거의 완벽한 서울말투를 쓰고
매력적인 미남입니다.
현재 백제예술대학에서 남한의 대학생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치고 있고
얼마전에는 평생의 배필을 맞아 결혼도 했습니다.

그가 탈북자라고 밝히지 않는다면
누가 그를 탈북자라고 알아챌 수 있을까요.

이런 그의 일상을 다룬 영화 '아리랑 소나타'가 곧 개봉된다고 합니다.
부산국제영화제, 프랑스 깐느 국제영화제 등에서도 선을 보입니다.

탈북자에 대한 편견, 불편한 시선을 가지고
그들을 대하고 있는 것 아닌지
'먼저 온 미래' 탈북자들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고민하게 된 인터뷰였습니다.


p.s    친구를 데리고 '김정일리아'를 보러 갔습니다. 평소엔 김정일이나 북한에 관심도 없으면서
, 저를 따라 함께 나서준 착한 사람입니다. ㅜㅡㅜ

일반 관객은 너댓명 정도뿐. 실제 영화에 출연한 탈북자나 북한 인권단체 활동가 등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래봤자 전체 관객은 열명 남짓. 
결론부터 말하면 '김정일리아'는 매우 불편한 영화입니다. 예상했던 내용이지만, 한시간 넘게 거듭될 수록 참고보기가 힘들 정도였습니다.  '윽, 나 토할 뻔 했어.'
불편한 진실이지만, 꼭 한번 보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한국인 감독이 아닌 미국인 감독입니다. 유대인 계통인 이 감독은  "우리와 같은 과거가 반복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면서 이 영화를 제작하게 된 계기를 밝혔습니다. "한국에서 이 영화가 개봉할 수 있을 거라곤 생각도 못했다."고 감격하던 모습이 선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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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협 전산망 해킹 사태가 북한 해킹부대의 소행일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그 근거로 보통 해커들은 돈을 요구한다든지 하는 요구사항이 있기 마련인데, 이번 해킹 사태에서는 그런 게 없다는 점이다. 즉, 사회 혼란을 일으키는게 가장 큰 목적이라는 얘기다. 

이와 관련해 임채호 카이스트 사이버보안센터 부소장은 "중국발 트래픽이라 북한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개연성이 높다고 본다."면서 "북한은 중국과 해킹 기술을 공유하고 있고, 이미 중국을 따라서 90년대 초반에 바이러스 부대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임 부소장은 NHN 보안 소장으로 근무했을 때 중국 해커 일당들이 NHN의 한게임 사이버머니를 해킹해 현금화하고 있다는 정황을 포착한 바 있는 웹 보안 전문가다. 그는 정보보호 진흥원 창립멤버로 근무하다가 카이스트 초빙교수, NHN 보안실장을 거쳐 최근 카이스트 사이버보안센터가 설립되면서 자리를 옮겼다.

원래 북한과의 연계 가능성(나는 통일부 출입, 북한 담당 기자니까 ㅋ)을 연계에 두고 임 부소장과 인터뷰를 했으나, 특별히 기사화 할만큼 도드라지는 내용이 없어 블로그에 게재한다.
다음은 일문일답

김정일

인터넷에서 퍼온 사진입니다-_-a

 


  *이번 농협해킹 사건을 북한의 소행이라고 추정할 수 있는 근거가 있습니까?
 =중국에서 만든 악성코드가 굉장히 많다. 하루 6만개 정도 된다. 실제 중국에서 하는 모든 행동은 북한도 같이 한다고 볼 수 밖에 없다. 
 개인정보 유출이나, 내부망 침투. 악성코드 하루 6만개인데, 우리가 만드는 백신으로는 하루에 겨우 1000개 정도 막을 수 있다. 
 지금도 모든 우리나라 정보기관에 발견되지 않는 악성코드가 있다고 보면 된다. 백신이 있어도 발견하지 못하는 악성코드가 많다. 
중국에서 만들어내는 바이러스가 전세계 바이러스의 60~70% 정도 된다고 보면 된다. 대개 트로이목마형 바이러스로 몰래 침투해서 악성코드를 심고, 정보를 빼내고 원격지시도 받아서 이뤄지는 형태.
 보통 중국해커들은 돈을 노린다. 디도스로 공격을 하고 협박해서 돈을 뺴가거나 개인정보 유출하거나, 온라인게임사를 해킹해서 온라인사이버 머니를 털기도 한다.
북한도 그럴 수 있다. 중국 기술을 북한과 공유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해커 실력이 중국이나 북한이나 비슷하다.
 중국은 78년도에 처음으로 컴퓨터 바이러스를 만들었고, 중국의 국방장관이 "원자폭탄보다 바이러스가 효과적인 공격기법이다."라고 말한 바가 있다.  원자폭탄은 터트려야하지만, 가지도 않고, 해커가 밝혀져도 잡을 수 없고, 해커를 데려갈 수도 없고. 타국에서 조종할 수 있고훨씬 더 효과적이라는 뜻이다.
 
 *과거에도 북한의 소행이라는게 밝혀진 적이 있나?
 -2009년에 국정원 사이버 안전센터장이 국회에서 비공개로 북한 소행이라고 밝힌 적이 있다. 그런데 야당의원 "중국에서 한 건데, 왜 북한이냐?"라고 지적했었다. 이에 대해선 국정원도 역추적 하는 기법 등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정황 상 북한이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2009년에 국정원이 중국에서 한국 사이버머니를 1000억원을 가져갔었다는 것을 포착한 적도 있다.
 
 *돈을 요구하지 않았다면, 북한은 해킹을 통해 뭘 얻을 수 있다는 건가?
 -얻는 게 없다. 그렇단 것은 중국 해커가 아니라는 얘기다. 과거에 미래에셋인가 증권사를 디도스로 공격할 때 한번 할 때마다 500만원을 요구한다. 금액이 크지 않기 때문에 순순히 준다. 그러나 10번 이상 되면, 큰 돈이다. 노숙자 등 대포 통장 통해서 입금을 요구한다. 경찰도 디도스 공격 분석하다보면 자금 세탁을 위한 것이라는 것을 안다. 중국은 돈 욕심이지만, 북한은 혼란을 야기하는 것이 목적이다. 당연히 북한이라고 판단하고 의심하고 있다.
 
 *북한은 그럼 우리나라만 공격하나?
 -미국도 공격한다. 대상이 어떤 집단이 아니고, 정보를 빼내기 위해서 공격하는 것이다. 중국이 산업스파이용으로 해킹을 많이 한다. 미국 정부의 한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이 1년에 2테라바이트~3테라바이트 가량을 미국 정부 사이트에서 빼간다고 한다. 중국이 경제력, 군사력 갖추고, 사이버 전력 갖추면서, 해킹 실력도 늘고 있는 것이다. 미국도 1000명정도의 전문 해커가 있으나, 3만명 정도로 늘려야 한다고 보고하고 있다. 중국에서 정보를 가져가지만, 이 가운데는 북한해킹도 있을 것이다. CIA에서는 북한 해커의 실력이 매우 뛰어나다고 보고 있다. 이미 90년대 초반에 북한은 중국을 따라서 바이러스 부대 같은 걸 만들었다.
 
 *북한 해커 존재는 드러나지 않나?
 -500명 정도로 추산한다고 하는데 실체가 드러난 것이 없다. 군인인 것으로 알고 있다.
 
북한 컴퓨터

컴퓨터 교육(?)을 받고 있는 북한 주민들. 역시 출처는 구글링

 
 *최근의 북한 해커들의 동향은 어떤가? 
-악성코드에 취약한 웹서버 통해서 전달된다. 악성코드를 중계하는 중계사이트 정보를 중간에 조금씩 둔다. 방문하면 실행되면서 자기도 모르게 내 컴퓨터가 좀비 컴퓨터가 된다. 거의 극한 상황까지 와 있다고 보면 된다. 6만개 중에 10% 정도나 막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카이스트 연구소가 G20의 보안을 맡았을 때도 봤지만, 악성코드를 내려보내는 취약 웹을 보고 공개하면 해커 쪽에서 순식간에 패턴을 바꾸기도 한다. 당시에도 중국에서 한 건지 북한에서 한건지는 알 수 없다. 북한은 직접 하지는 않고, 중국 아이피를 사용한다.
  
 *북한 해커들의 특징?
 -패턴은 비슷하다. 카이스트 연구소가 만들어면서 A급 해커를 육성하고 있다. 북한도 A급, B급,C급 해커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NHN 한게임의 사이버머니가 당시 중국을 통해 북한의 외화벌이용으로 사용됐나?
   -그렇지 않다. 분명한 것은 NHN 한게임에서 중국 해커들이 많이 들어와서 악성코드를 많이 뿌렸다는 점이다. 계정을 훔치거나 개인정보를 가져가거나. 다만 그것이 중국으로 흘러들어가서, 현금화를 했다는 것이지, 북한으로 갔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혹시 소니 플레이스테이션 해킹도 북한이 했을까?
 -북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한국이 중국, 북한의 놀이터가 되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한국 인터넷 망이 워낙 뛰어나고, 우리 말이 통해서 대포통장을 만들기도 좋고, 지리적으로 가깝기 때문이다.  한국에는 조선족도 있으니까. 미국에서 돈벌이하기는 어렵다. 플스의 개인정보를 팔 수는 있다.
 
 *중국, 북한으로서는 해킹기술이 일종의 무기이면서 돈벌이 수단인 것 같은데...?
 -그렇다고 볼 수 있다.
 -전세계에 70개 정도의 백신이있다. 이걸 다 테스트를 해서 안 걸리는 것만 한국으로 보낸다. 
 
 *다음 타겟은 어디가 될까?
 -모르겠다. 당연히, 큰 사이버 테러를 생각할 것. 은행이나 학교가 될 수도 있고, 순식간에 여러군데가 한꺼번에 이뤄지면 엄청난 혼란이 일어날 것.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정보보안에 대한 예산투자할 때, 우리는 사고가 터지면 돈 주고, 안 터지면 돈 안주는 식이다. 작년 대통령이 "해커들이 호주에 이민가서 연봉 20만불에 5년 근무하면 시민권 준다."는 얘기를 듣고 노발대발 한 적이 있다. 실력있는 실력자를 왜 키우지 못했느냐는 건데, 해커를 범죄자로 생각하지 말고 양성화하고 법망 테두리에서 공격을 막을 수 있게 육성해야 한다. 예산과 인력양성 장기적으로으로 봐야 한다. 과학적이지도 않고 장기적 안목이 없다. 심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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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직원들을 소녀시대로 분장시켜서 모델로 내세운 이 회사. 
그동안 회사 상품 소개(은행이야 워낙 상품이 자주 나오니까)에 동원되는 은행 여직원들을 많이 봐왔지만 이런 건 처음이다.
그동안 크게 신경쓰지는 않았는데, 이건 좀 심기가 불편하다. 
 
하나은행 소녀시대

하나은행에 오시면 창구에 소녀시대가 기둘리고 있나요?

 
본인들은 자기 얼굴이 신문기사마다 사용되는 걸 원치 않으면서도 회사의 요구로 서게 되는 경우가 많을 터. 요즘에야 페북이니 싸이월드니 자기 사진 올리는 것에 대해 거리낌이 없겠지만, 나는 내 정보를 더 숨기게 되고 보호하려고 하는데. 여튼 얼굴이 만방에 알려진다는 것은 좋기만 한 일은 아니다.

한 때 주요 대기업의 얼짱리스트가 메신저를 타고 돌았듯이. 조만간 이들의 신상정보가 돌아다니게 될지도 모르겠고. 

<여성의 상품화> 같은 말은 쓰지 않으련다. 예쁜 직원들이 회사의 모델을 하는게 뭐가 나쁘냐고 하겠느냐마는, 소녀시대처럼 예쁜 옷 입혀서 남성을 자극하는 이 광고는 여튼 맘에 안든다. 


p.s 원래 페이스북에 짧게 사진 설명 정도 쓰려고 했는데, 말이 길어지다보니블로그로 가지고 왔다. 150자 안팎에 익숙해지다보니, sns와 블로그도 문체가 심각하게 다르다는 것을 오늘 알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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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간 동일본 대지진 취재를 위해 일본에 다녀왔습니다. 

서울에 들어오니, 원하는 대로 식당에서 밥을 사먹을 수 있고, 전철과 버스를 자유롭게 탈 수 있고, 따뜻하게 잠 잘 곳이 있다는 사실이, 왠지 일본인들한테 미안하게 느껴졌습니다. 피난소의 일본인들은 아직도 물이 들어오지 않고, 전기가 들어오지 않고, 가스가 공급되지 않아 그야말로 난민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피난민 가운데는 고령자가 많아 약품이 없어 건강상태가 점점 악화되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벌써 스트레스&쇼크로 인한 사망자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일주일이 되도록 피난소에서 제대로된 의식주도 공급받지 못하면서도 호통한번 치지 않는 일본 국민들을 보면서 '참, 착하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정말 착합니다. 오니기리(주먹밥) 하나 먹는 것도 '사치'라면서 이거라도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라고 말합니다. 허리가 90도나 굽혀지도록 인사에 또 인사를 합니다.

게센누마 대피소

쓰나미가 평일 낮에 일어나 주로 여성과 고령자의 피해가 컸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라면 어땠을까 생각해봤습니다. 피난소 생활이 이틀만 되도 피난민들은 가만히 있지 못할 겁니다. '정부는 뭐하고 있냐.' '이대로 방치할 거냐.' 기업들도 나설 겁니다. 생수회사, 라면회사, 쌀밥회사, 비누회사, 통신회사가 각 피난소 앞에 진을 치겠지요. 국민들이 나서서 자원봉사에 나서고 밥과 국을 실어나르겠지요.  (원전피해가 없는 곳에 한해서;)

몇해전 강원도 태백 산간 지역에 극심한 가뭄이 들었던 때가 기억납니다. 수자원공사에서 만든 생수 수백톤을 실어날라 가뭄지역 주민들의 목을 적셔주었었죠. 전국 각지에서 구호물자가 전달됐습니다. 

정말, 난감했던 것은 피난소 어디를 가도, 정부나 지자체에서 보냈다는 지원물자를 보지 못했다는것입니다. 유일하게 게센누마지역에서 KDDI 통신회사 차량을 한 대 봤습니다. 기지국이거나 아니면 전화를 걸 수 있는 이동차량이었던 것 같습니다. 

어제(17일) TV를 보니 자위대가 지원물자를 보내더군요. '아, 드디어 보내는구나.'하고 들여다 봤더니 고작...... 담요였습니다. (아.... 속 터져...)

간 나오토 총리

간 총리는 동일본대지진 발생시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행정수반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저는 지난 6일간 일본에 있으면서 TV속에서 단 한번도 국회의원이나 지자체 장을 본 적이 없습니다. 피해지역 동네에는 곳곳에 정치인들의 이름이 걸려있었지만, 그들의 얼굴을 직접 보거나, TV에서 조차 지원활동을 벌이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우리나라와의 보도관행이 달라서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간 나오토 총리는 별 성과도 없는 회의를 하루에 예닐곱번씩 하고 있다고 합니다. 일본 천황은 16일 '국민들의 안전을 바라는' 대국민 담화를 '비디오 테이프'로 발표했습니다. 생중계가 아니고. 일각에서는 이미 천황은 먼 곳으로 도망친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옵니다.
 

에다노 유키오 관방장관

에다노 유키오 관방장관. 100시간 이상 잠을 못잤다고 하는데, 잠을 자더라도 확실한 대책이 필요하다.


일본 국민이 위험에 처했을 때, 일본의 지도자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요. 피난민의 수가 50만명이 넘었습니다. (일부 집으로 복귀해 현재 43만명 수준). 일본 정치권에 정말 리더십이라는 게 있기는 있는 걸까요. 


후쿠시마 원전에 대한 도쿄전력의 대응 행태를 보면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는 일본인 특유의 성격이 그대로 들여다 보입니다. 어느 누구 하나 직접 결정하거나 하지 못하고, 누군가 지시를 내려줄 때까지 기다리는 그런 근성 말입니다.
정치권은 어떤가요. 수시로 바뀌는 총리. 장관은 더 자주 바뀝니다.
외교가의 한 고위 당국자가 동일본 대지진 전 한국을 찾았을 때 한 말입니다.
"일본은 현재 정치 리더십 부재로 정치까지 혼란. 악순환의 매카니즘에 빠졌다. 평성 23년간 수상은 16명 바뀌었다. 3년간 4번째다. 우리도 힘들다. 새로 임명된 내각 대신, 주요인사와 사귀고 나면 바뀐다. 하기가 싫다."



카스미가세키(한국의 여의도 쯤)에서는 벌써 다음 총리 후보로 누가 거론된다는 등의 이야기가 나온다고 합니다. 지금 다음 정권을 누가 잡을 것이냐 보다 국민의 민심을 어떻게 얻느냐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일본 정치권의 리더십 부재로 전국민은 물론 주변 나라들까지 불안에 떨게 하고 있습니다. 
일본 국민이 변할까. 일본 정치가 변할까. 이번 동일본 대지진 이후 변하는 것은 일본의 지형 뿐만이 아닐 것입니다. 과연 일본의 정신이 바뀔지, 사회와 정치가 변할지. 두고 봐야 하겠습니다.

일본 재건과 국민들의 무사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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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들썩이게 하고 있는 상하이 스캔들.

총영사를 지낸 김정기씨는 거로 출판사의 보케 2만2000, 3만3000 등을 만들었던 사람이다. 어쩌다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았는지 이명박 선거캠프에서 줄을 대고 섰다가 상하이 총영사로 갔다.

이번 사건은 비외교관 출신의 특임공관장들의 기강 해이, 전문성 부족, 경험부족에서 나온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특임공관장을 임명하는 경우는 그 지역의 전문성을 충분히 갖추고 있어 전문외교관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경우다. 이 경우 물론 기존 외교부 출신의 외교관보다 출중해야 함은 당연하다. 정치인 대사를 임명하는 경우도 전문성은 기본이고, 그 외에 정치적 수완을 발휘할 수 있어야함은 말해 무엇하겠는감.

일명 '거로 김정기'씨는 상하이와 무슨 연관, 어떤 관련이 있나. 내가 아는 바로는 중국과는 그다지 상관이 없는 인물이다. (아래, 김정기 전 총영사의 경력 첨부했습니다.)

김정기 전 상하이총영사

신 중국 경제론을 들고 계신 김정기 전 총영사





그러면 상하이는 어떤 지역인가. 한국 교민 수십만명이 살고 있고, 진출한 기업만 수만개에 이를 것이다.(자세히 조사안해봤다. 자세히 조사 하나 마나 그 중요성은 누구나 공감할 거라 생각한다.) 

한국과 중국의 교역관계를 생각해보자. 중국은 미국 다음으로 우리나라의 두번째 규모의 교역국가이고, 앞으로 그 규모는 더욱 커질 것이다. 교역으로 따진다면야 거리나 기업환경을 봤을 때 미국보다 중요한 시장이다.

이런 점들을 충분히 고려한 후 김정기 총영사를 임명했다?... 라고 생각되진 않는다. 
상하이 총영사관은 기껏해야 직원이 20명 안팎이다. (열몇명이라고 들었지만 정확히는 모르겠다.) 여기에는 외교부 직원 뿐 아니라, 이번 사건에서 보듯, 법무부, 지경부 등 각 부처에서 주재관이 나와있다. 영사관 직원들의 기강을 다잡고 안팎 관리를 잘하는 것이 총영사의 중요한 임무 가운데 하나다. 외교 못지 않게 내치, 즉, 어디가서 사고치지 않는지, 영사관 직원이라고 직원 남용하고 다니지는 않는지도 중요하다. (이 부분에서 국정원 파견 직원은 뭐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다@_@) 이런 단속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은 영사의 책임이 크다고 생각한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특임공관장의 필요성은 인정한다. 남미라든지, 북유럽, 혹은 태평양 군도 지역에서는 그 지역에서 오래 살면서 인맥을 풍부하거나, 전문성을 갖춘 인재들이 영사, 대사로 활약하고 있다.

그런데,
내 사람 자리 챙겨주는 방법으로 특임공관장을 내주는 것.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매우 불만이고 또 불안이기도 하다. 상대 국가 입장에서는 어떤 외교관을 보냈는지를 보면서 자국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가늠하기 마련이다. 이런 스캔들 난 것 자체가 매우 얼굴 불거지는 사건이다.

오사카 총영사로 내정된 김석기 전 경찰청장이 걱정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경찰 시절 일본에서 몇년간 근무한 경력이 있고, 일본어도 능통하다고 한다. 이를 전문성으로 볼 것인지, 김정기 총영사를 보면서 다시 생각해 봤다. 
물론, 경찰청장 출신이니만큼 단도리는 확실히 해주실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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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오늘 아침 적십자사로 통지문을 보내 귀순희망자 4명에 대해 협의하자고 했습니다. 
적십자회담 실무접촉을 열어 4명이 귀순 의사를 확인하고 싶다면서, 4명을 실무접촉 때 데려오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북한은 4명의 가족을 같이 데려오겠다고 합니다. 

귀순하기로 마음 먹은 이 4명을 가족들과 만나게 하겠다는 북한의 속셈은 한마디로 사람을 피말려 죽이겠다는 것으로 밖에 안보입니다. 이들이 가족들을 보면 얼마나 마음이 흔들리겠습니까.

내가 남한으로 귀순하면 내 가족들은 어떻게 될까. 제대로 먹고 살수나 있을까. 마음이 흔들려 귀순을 철회할 가능성 99%라고 봅니다.

그렇다면 귀순을 철회하면 끝이냐. 이들이 다시 북한으로 돌아간다 쳐봅시다. 멀쩡하게 살 리가 없지요. '배신자' 딱지가 붙어 어떻게 지낼 지 저는 미처 상상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귀순을 철회하지 않을 가능성 1%라고 봅니다. 귀순을 결정하기까지는 북한에 남아있는 가족에 대해서도 충분히 고려한 끝에 내린 결정일테니까요.

근데, 다행히(?) 남한에 남겠다고 하더라도 눈에 가족들이 얼마나 어른거릴지... 참...











북한의 이런 제의는 참 비인간적인 아이디어인 것 같습니다. 이 사안을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다룬다고 하더니 가족을 대면시키는 방법을 내놓다니요.

다행히 우리 정부는 4명을 회담장에 데려가지 않겠다는 입장은 확고합니다. "귀순 의사를 밝힌 분들, 보호나 망명을 요청하는 분들에 대해 자유의사를 확인하는 것을, 본인들에 대해 공개적인, 공식적인 자리에 입회시켜놓고 확인을 하거나 회의를한다는 것은 들은 적이 없다. 본인들의 귀순의사, 자유의사를 확인하면 되는 거다." (통일부 당국자)

귀순희망자 4명은 이 소식을 알고 있을까요?


p.s 그런데 27명은 북한으로 돌아가면 안전할까요?
'남조선의 온갖 회유획책에도 떳떳하게 돌아온 용사(?)'로 추앙받으려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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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금요일 판문점에서 대기하다가 돌아간 북한 주민 27명은 다시 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이날 몇몇 언론에 의해 이들의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습니다. 사진에 찍힌 여자들을 보니 몸체 (키)는 작았지만 볼은 통통해보이더군요. 당초 이들이 먹을 것이 부족해 식량을 찾아 배를 탔다가 조류에 휩쓸려 표류했다는 정부의 발표와 달리 말이죠. 아마 한달동안 남한에서 잘 먹고, 잘 쉬고 그랬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남쪽으로 온 지 한달이 다되어가는데 북으로 돌려보내주지 않으니 속으로는 얼마나 노심초사 했을까요. 아무리 잠자리가 좋고 먹을거리가 풍족해도 마음이 편치 않으면 얼굴에도 수심이 가득할텐데요.. 여튼 사진 한장 만으로는 판단할 수 없겠죠.

북한 주민 2명

판문점 인근에서 북으로 송환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북한 주민. 앳되보입니다. (중앙일보 제공)



이들은 분홍색 점퍼를 입고 있었습니다. 이건 우리 정부에서 방한용으로 주는 것이죠. 꽃분홍색. 누구의 센스인지 ㅎㅎㅎ 보통 북한으로 송환할 때는 공식적으로는 아무것도 안 쥐어보낸다고 합니다. 비공식적으로는 온갖 시계, 달러, 먹을거리, 의약품을 쥐어줘 보낸다고 하는데요.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빈 손으로 보낼 겁니다. 그런 것들 가지고 가봤자, 심문과정에서 압수당하고 실제 본인 손에 남기는 어려울 테니까요. 특히 돌아오면 '남한 물 뺀다'고 강도높은 조사를 받는다고 하죠. 

어떤 송환자는 북으로 올라가기 전에 판문점에서 남한에서 입혀 준 옷 다 벗고 팬티 바람으로 가기고 한다고 합니다. "퉷, 더러운 남한 물자 받지 않겠다."면서 욕하고 간 경우도 있다고 하네요.


북한은 이들을 받아줄까요?? 시나리오 3가지.
 
시나리오1. 31명 전원을 보내지 않으면 받지 않는다.
-북한의 현재 입장입니다. 귀순하겠다고 밝힌 4명도 돌려보내라는 것인데, 4명에 대해서는 절대 북한으로 돌려보낼 수 없다는 게 우리 정부의 입장입니다. 4명을 돌려달랜다고 돌려주면, 북한에 돌아가서 어떤 꼴을 당할지 뻔하니까요. 그들을 사지로 보낼 수는 없죠.

시나리오2. 27명도 안 받는다.
-이건 국가로서의 의무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북한으로 돌아가길 원하는 북한 국민을 받지 않으면 북한의 주장대로 '인도주의적인 차원에서' 비난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시나리오3. 27명이라도 받는다.
-북한은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 31명 전원을 요구하다가 결국은 27명이라도 받게 될 것입니다.

27명은 이제 언론의 카메라에 포착되는바람에 얼굴도 노출됐습니다. 이들이 무슨 죄가 있겠습니까마는... 부디 북한에 돌아가서 무사히 지냈으면 합니다.

내일(7일) 판문점에서 다시 남한과 북한이 27명 송환문제를 놓고 전화통화를 합니다. 

북한 주민 27명은 언제쯤 북녘땅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귀순 4명은 난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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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일자 (3월2일자) ‘오늘의 눈’과 관련된 글입니다.
 
 
 요즘 TV에서 전해져 오는 리비아 소식은 제 눈와 귀를 의심하게 합니다. 이미 천명 이상이 사망했다고 하니, 거의 대학살 수준입니다. 카다피는 전투기를 동원해서 시민들을 동원하고 있습니다.
 
 전 TV를 보면서 31년전, 광주 민주화 항쟁 때도 이와 비슷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1980년 5월 18일. 전 이때 아직 아기였기 때문에 이 때 당시의 광주의 현장도, 사회 분위기도 전혀 알지 못합니다. 아마 머리가 굵어진 청년이었더라도 서울에 살고 있었다면 잘 몰랐을 겁니다. 당시에는 현장 접근도 불가능했고, 전해지는 신문, 방송보도도 제한적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2011년은 다르군요. 리비아 정부가 언론인을 탄압하고, 내끌어도, 휴대가 간편한 스마트폰과 SNS, 유튜브, 인터넷이 있으니까요.


 
 아마 1980년 광주에도 이런 작고 빠른 매체들이 있었더라면 광주 소식이 서울과, 중국과, 런던과, 뉴욕과 아프리카에도 전해지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그랬더라면 국제사회가 좀 더 관심을 갖고 바라봤을 것이고,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무차별 발포와 이후 이상하게도 대통령이 오르는 기이한 역사는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역사에서 가정은 언제까지 가정이므로, 더이상 발전시키지는 않겠습니다.
 
 광주 민주화 항쟁 때는 몰랐으니까 어쩔 수 없다고 치더라도, 2011년 리비아를 비롯한 이집트, 중동 민주화 바람은 나도 알고 아버지, 어머니도 알고, 외교부 장관도 알고, 대통령도 다 아는 사실입니다. 알고서도 침묵하는 정부에 다소 실망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물론, 외교라는 것이 하고싶은 말 막 할 수 있는 무대도 아니고, 전략적인 결정이 무엇보다 중요하겠지요. 하지만 그 내용은 인류 보편적인 가치에 대한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합니다. 이런 문제에 대해서 먼저 목소리를 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이번 리비아 사태에서 우리 정부의 대응은 매우 소극적이었습니다. 2월 26일 유엔 안보리 리비아 제재 결의안에 참여하는 것이 첫 액션이었고, 28일 외교부 대변인이 언급한 것이 두번째 액션,같은 날  제네바에서 열린 인권위 기조연설에서 한 줄 언급한 것이 세번째 였습니다. 이는 모두 미국이 유엔 제재위를 통한다는 방침이 서고 난 다음이었습니다.  미국과 유엔이 먼저 나서기를 기다렸다가 그제서야 숟가락을 얻는 정도입니다. 
 
 한 외교관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현실적으로 강대국이 아니다. 중간국가다. 강대국이 아니고서는 먼저 목소리를 내기 어렵다. 이럴 때 유엔이 매우 유용하다.” 이번 리비아 사태에 대한 정부의 움직임이 이 한마디로 이해가 됩니다.
 
 일각에서는 우리나라가 카다피의 행보를 살피느라 입장을 빨리 정리하지 못했다고 분석합니다. 우리나라는 리비아에 상당히 많은 기업이 나가있고, 석유공급 문제도 걸려있고, 앞으로도 많은 사업을 진행시키려고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카다피 왕국이나 다름없는 리비아에서 사업을 하려면 카다피의 눈치를 잘 살펴야 한다는 것이죠. 더군다가 지난번 리비아 스파이가 적발됐을 때에 카다피의 비위를 건드린 적이 있어서 이만저만 비굴해져야 하는 게 아닙니다. 

 
 
  리비아 정세가 기운 것은 이미 수일이 지났습니다. 수천명이 죽고, 비행기를 동원해 살상 명령을 내리고, 카다피가 TV에 나와 헛소리를 할 때 이미 정세판정은 나왔다고 봅니다. 
 
 국제사회의 비난 여론을 모으는 것, 모으는 것은 별 것 아닐지 몰라도 해당국 국민에게는 큰 힘이 되고, 독재자에게는 큰 부담이 됩니다. 이번 유엔 안보리 제재가 앞으로 카다피는 국제사법재판소 등 국제법정에 반인륜 범죄자로 불려갈 가능성을 높여주었습니다.  리비아 유혈혁명은 킬링필드처럼 반인륜 대학살로 분류될 것이고 카다피는 폴포트처럼 국제적인 도망자가 될 것입니다.
 
 반인륜 범죄에 대해 누구보다 국제적 관심을 갈망하는 나라는 한국입니다. 광주 민주화 항쟁 때도 미국은 나서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개입논란이 있죠) 아웅산 테러사건, KAL기 폭파 사건 때도 유엔은 나서주지 않았습니다. (천안함 폭침사건이 처음이었습니다.)
 
 리비아 사태를 보면서 남일 같지 않다고 생각한 건 저 뿐만이 아닐겁니다. 광주 민주화 항쟁을 떠올린 것도 저 뿐만은 아닐 겁니다. 
 
 길바닥에서 신음하고 있는 리비아 국민들은 어디선가 구원의 손길이 내려와주기를, 누군가 “대학살을 멈춰라.”라고 대신 외쳐주기를 고대하고 있지는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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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외교팀 와서 첫 블로그를 딱딱한 것으로 썼네요. 다음엔 좀 소프트 하고 잼나는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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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았던 자동차 담당기자의 소회랄까, 그냥 떠나면서 그냥 가기 아쉬워서 몇자 적어봅니다.
2010년 10월초부터 2011년 1월초까지 약 3개월 동안 자동차 담당을 했습니다. 그동안 제가 맡았던 분야하고는 확연히 달랐던 곳입니다.

우선 언론이 무지하게 많다는 겁니다. 종합일간지, 경제지, 인터넷지 그리고 무시못할 자동차전문지. 연말 한 업체의 송년모임에 갔더니(기자 송년모임) 100명 정도 왔더군요. 자동차가 워낙 대중적인 인기가 많은 분야이고 또 전문가 집단도 대규모로 형성되어있어서 기자가 이렇게 많은가 봅니다. 

서울신문은 지면 사정이 넉넉치 않아서 2주에 1번 자동차면이 있을 뿐인데 담당기자로서는 참 애가 탈 때가 많았습니다. 제 때 정보를 싣지 못하고 하고싶은 얘기를 다 담지 못하고...
업계 입장에서도 기사를 많이 다뤄주는 곳이 장땡인지라 서울신문 같은 애매모호한 매체들은 우선순위에서 항상 밀렸습니다. 
서울신문 자동차면

그나마 기사답게 썼던 한 꼭지. 다 타보고 비교한다고 공 많이 들였었는데...(2010.12.4 자동차면)



이미 언론시장이 많이 바뀌었다는 걸 부동산 담당 기자를 하면서 알았지만, 자동차업계는 또 한번의 천지개벽이었습니다(충격이라기 보다는 씁쓸하달까요...) 그래서 자동차 담당을 할 때 여성 3~4년차 운전자의 시각으로 시승기도 쓰고 기사도 쓰겠다고 생각했지만, 지면의 한계로 못해보고 가는게 아쉽습니다.
 
둘째 자동차 담당기자의 꽃이라는 신차 발표회, 해외 모터쇼는 한번도 못해보고... 자동차와 평생 무슨 인연이 있었을까 싶은 현대건설만 디립다 파다 갑니다. 

지난해 10월~올 1월까지 현대차 그룹과 현대그룹의 현대건설 인수 진흙탕 싸움을 보고 떠납니다. 인사 발령이 난 1월 7일, 채권단에서 현대차에게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를 부여하기로 했으니, 왠지 마무리(?_)하고 간 느낌도 듭니다

시기를 놓쳐 지면에 싣지 못했던 기사 2개를 올리면서 소회를 대신합니다.

돌아올 수 없는 강 건넌 현대家



현대건설 M&A가 남긴 것


마지막으로 제가 자동차 업계를 떠난다고 하니 아쉬워하는 사람은 제 주변 사람들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별로-_-a) 수입차 시승을 못한다고 하니 왜 저들이 아쉬워하는지 ㅋ 짧았던 3개월 동안 제가 타 본 수입차는 폴크스바겐 씨씨, 닛산 370Z, 혼다 CR-V, 스바루 포레스터, 볼보 C30, 혼다 인사이트, 푸조 308, 아우디 A8 입니다. 

타 본 차 중에 제일 비쌌던 건 아우디 A8. 1억4000만원. 원래 대중적인 A6를 시승하려고 했으나, A6가 고장 수리를 들어가는 바람에 생각에도 없었던 A8를 몰아봤으니, 자동차를 떠나도 원 없습니다. ㅎ  A8 몰고 이마트도 갔다온 여자 입니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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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산차는 GM대우 알페온, 현대차 쏘렌토, 쌍용차 렉스턴RX4를 타봤군요. 알페온은 시승기도 쓰지 못했고, 가장 처음 타본 차였고 여러 의미가 있는 차였는데 아쉽습니다. GM대우 홍보팀에 좀 미안하기도 하고;;

짦은 시간에 이 차 저 차 타본 건 차에 빨리 적응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많은 차를 타 봐야 시승기도 정확하게 쓸 수 있고, 다른 기자들에 쳐지지 않고 그런 이유로, '땡긴다'고 생각하지 않고 여기저기서 끌어다 탔습니다.

제가 느낀 건 국산차는 이것저것 옵션을 갖다붙인 종합선물세트인반면, 수입차는 심플한 자동차 그자체라는 겁니다. (국산차도 해외 나가면 어떨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개인적으로는 화려한 옵션보다는 심플한 게 좋습니다. 옵션 다 빼고 좀 싸게 팔면 어떨까 싶습니다.

수입차가 한 해에 10만대가 팔린다고 하니 수입차 대중화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습니다. 거부감도 많이 사라졌고 가격대도 많이 낮아졌습니다. 저도 다음번에 차를 사면 하이브리드차나 수입차를 사고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여하튼, 산업부의 꽃이라는 자동차 담당도 해보고 떠나는군요... 더 훌륭하신 선배가 자동차를 맡아서 좋은 기사 많이 쓰시리라고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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